주남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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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선은 거창에서 태어나 자라고, 활동한 거창이 낳은 거창의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거창뿐만 아니라 한국 교계의 큰별이었다.

주남선(1888년 - 1951년)은 19세기 후반 민족적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에 거창읍 동동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 일제 침략시기와 해방정국기에 걸쳐 주로 활동한 목회자, 애국지사, 교육자였다.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그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은 행동적이고 신념적이었다.

그는 거창의 1919년 3.1 독립운동을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국권 회복단, 독립군 서로군정서에서의 모금활동을 통하여 줄기차게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그의 독립운동의 바탕에는 일제의 교육동화정책, 종교탄압정책 뿐만 아니라 일제의 우리 민족 말살 정책을 샅샅이 밝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앙을 지키고 민족교육의 활성화만이 영광된 새로운 국가를 건설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항일 운동의 하이라이트인 일제 신사 참배 반대운동과 광복후에 그가 한상동 목사와 함께 정열적으로 추진하여 1946년 9월에 설립한 고려신학교와(부산 고신대학교와 천안 고려 신학대학원으로 발전) 1950년 4월에 설립한 거창성경학교와 1953년 6월 16일 그의 장남 주경중 장로가 이 설립한 거창고등학교가 (1956년 전영창 선생이 인수 받음) 이를 입증하고 있다.

 

주남선은 젊어서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나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뜻을 세워 목사가 되기 위해 머나먼 길 평양을 10년 동안 오고 가면서 신학을 공부하여 1930년 3월 평앙 신학교를 제 25회로 졸업하고 1930년 3월 평양 신학교를 제 25회로 졸업하고 1930년 10월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그는 1931년 2월 22일에 거창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죽는날까지 거창을 떠나지 않은 그의 삶의 역정은 숭고한 신앙절개와 자기희생 정신의 구현이었다. 그의 생애에서 1940년에 일본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당하여 1945년 8월 17일 평양 형무소에서 석방될때까지는 가시밭깅이요 형극의 길이었다.

 

해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서 거창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시무하면서 고려 신학교의 설립과 한국교회의 정화를 위해 기도하는 중 1950년 6.25 사변을 당하여 거창교회를 사수하였다. 교인들 대부분이 피난을 갔으나 그는 폭격속에서도 기도하며 심방하며 교회를 지켰다.

공산군에게 붙들려 심한 구타를 당한 후유증으로 1951년 3월 23일 63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갔다. 그후 대한민국 정부가 1977년 12월에 건국훈장을 추서하였으며 대전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